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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를 숭배하는 허영심 누군가를 신과 같다고 하는 것은 우리는 그와 경쟁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천재도 먼저 주춧돌을 놓고 그 위에 세우는 일에 익숙해지면 꾸준히 소재를 구하고 쉴새 없이 그것을 여러가지 형태로 만들어 본다. 그 밖에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 천재는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이다. 천재도 우리와 같은 노력과 인내를 통해 만들어진다는 것을 기억하고 자신을 믿고 열정을 쏟는다면 자기 분야에 천재가 될 수 있다.
위대함의 숙명 어떤 윟대한 현상 뒤에도 변종이 뒤따른다. 특히 예술의 영역에 있어서는 그렇다. 위대함의 전형이 꽤 허영심 강한 본성을 자극해서 외면적으로 본뜬다든가, 능가하고 싶게끔 만든다든가, 게다가 훌륭한 재능은 많은 약한 힘이나 싹을 짓누르고 자기 주위에서 이른바 자연을 황폐케하는 숙명적인 성질을 가졌다. 공통의 관심사가 있고 서로 공감할 때 관계가 돈독해지며 서로를 성장시키기 때문에 이러한 관계는 서로 뜻이 달라 결별해도 나쁘지 않다. 오히려 일상적이고 의무적으로 시간과 열정을 소모하는 관계가 무가치하다.
천재의 고뇌와 가치 예술의 천재는 즐거움을 만들어 주려고 하지만 그가 아주 높은 단계에 있으면 감상해줄 사람이 없어진다. 그는 성찬을 차려놓지만 사람들은 그것을 바라지 않는다. 이러한 사실들은 그에게 웃음이나 감동적인 비장감을 가져온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사람들을 만족시킬만한 강한 힘이 없기 때문이다. 마치 진수성찬을 차려 놓았지만 사람들이 그것을 바라지 않는 것과 같다.
영감에 대한 믿음 모든 위대한 사람은 고안해내는 일 뿐 아니라 버리고 고치고, 정리하는 점에서도 권태를 모르는 훌륭한 노동자다. 뛰어난 예술가 또는 사상가의 상상력은 언제나 좋은 것과 일반적인 것, 또 나쁜 것을 생산한다. 더 없이 세련된 그들의 판단력이 그것들을 취사선택하여 결합하는 것이다. 도예가는 자신이 만든 도자기가 흡족하지 않을 때 미련없이 깨부순다. 이 정도면 괜찮겠지 하는 안이함으로 도자기를 깨어버리지 않으면 도자기에 대한 섬세하고 완전무결한 감각이 무뎌지고 예술가적 혼마저 빛을 잃기 때문이다.
미의 느린 화살 가장 고귀한 종류의 아름다움은 갑자기 매혹시키는 그런 아름다움이나 태풍처럼 취하도록 덮쳐오는 아름다움이 아니라 (오히려 이런 것은 구토증을 일으키기 쉽다) 인간이 거의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지니고 있는 듯한, 또한 꿈속에서 우연히 만나는 일도 있지만 겸손하게 우리 마음에 걸려 있다가 드디어 우리를 완전히 사로잡고, 우리의 눈을 눈물로 채우고, 우리의 마음을 동경으로 채우듯이 천천히 스며드는 것이다. 아름다움은 단순히 외부적인 시각적 매력이 아니라 우리의 내면에 깊이 스며들어 있는 것으로 우리의 감정과 욕망을 자극한다.
시의 미학 시인들은 인간의 삶의 짐을 덜어주려고 애쓰는 한 비참한 현재로 부터 시선을 돌리게 하거나 그들이 과거 쪽에서 보내오는 빛에 의해 현재가 새로운 색채를 띠도록 돕는다. 시를 읽고 철학적인 물음을 갖게 됨으로써 삶의 의미와 죽음과 같은 주제들을 다루며 깊이 있는 사고를 할 수 있게 된다.
동정을 요구하는 자만심 화를 내고 다른 사람의 감정을 해쳐놓고서 처음에는 자신을 나쁘게 생각하지 말라고 그 다음에는 이렇게 과격한 발작에 시달렸으므로 자기를 동정해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인간의 자만심이란 그 정도까지 나아가는 것이다. 화를 내는 것은 타인의 삶을 내 마음대로 조종하고 싶은 자만심이 있기 때문이다. 분노의 감정을 극복하지 못하면 감정의 노예가 된다.
보수를 받는 정의 칭찬은 트랙 위를 달리고 있는 사람들에게 환호를 보내는 것이지 결승점에 와 있는 자에게 보내는 것은 아니다. 보상과 칭찬은 행동을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하기 위한 수단이다. 인간의 이익을 위해 이러한 동기를 존속 시키려면 허영심을 자극하는 것이 필요하다. 왜냐하면 인간은 칭찬과 비난에 민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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